천셴구묘
천셴구(陳仙姑,진선고)의 이야기
천셴구(陳仙姑)는 본명 진단화(陳端和)이며 수이베이촌(水貝村, 현 공밍상촌(公明上村)) 출신이다.
'공명진지(公明鎮志)'에 따르면 함풍(咸豐) 10년, 진단화는 바오안(寶安) 공밍 수이베이(水貝鄉)향 진(陳)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진단화는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부지런하며 호기심이 많아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항상 꼬치꼬치 캐묻는다. 당시 대비강(大沘河) 일대에 의사가 적고 약이 부족하여 마을 사람들이 병이 있지만 의사를 구할 곳이 없었다. 진단화는 병을 치료할 좋은 처방을 찾기 위해 동관(東莞), 쩡청(增城), 신안(新安) 등 여러 곳을 방문하여 경력이 풍부한 의사를 찾아 많은 처방을 수집하고 정리했다. 그 중 남성과, 부인과, 소아과 각 100개, 외과 32개, 안과 53개 처방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유행하는 이질, 복통, 감기 및 열과 같은 많은 질병을 치료했다. 오늘날 300개 이상의 처방전이 여전히 의학적으로 참고할 가치가 있으며 의학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수이베이촌(현 공밍거리 상촌上村 지역사회) 북쪽에 대비강(大沘河, 현재의 마오저우강茅洲河)이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이하신(二河神)이라고 하는 강의 신이 있었는데 매년 봄과 여름이면 풍랑을 일으켜 강물이 세차게 범람한다고 한다.
진단화가 대비강 이하신을 처벌하기 위해 천국에 승천(升天)하여 신선이 된 후 천관(天官)에게 대비강 이하신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고 하소연했고, 백성들이 다사다난하니 천궁에 처벌을 청했다. 그리하여 천관이 이하신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진단화를 대비강의 신으로 봉하여 신선의 반열에 들어하였고, 이때부터 진단화는 천셴구로 개칭되었다. 천셴구가 대비강을 다스린 후 수이베이촌 일대는 비바람이 순조롭고 마을 주민들은 편안하게 살았다.
동치(同治) 연간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천셴구묘를 헌납하여 천셴구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장소 중 하나로 삼았다.
중화민국 시기에 천셴구의 이야기가 널리 퍼졌고 둥관, 쩡청, 신안 등 다양한 성(姓)을 가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한때 거리 곳곳에서 화제가 되었다.
2004년 천셴구묘가 완공된 후부터 천셴구의 이야기가 다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천셴구묘는 상촌(上村) 지역사회 위안산(元山)에 위치하며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1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청나라 후기에 지어지기 시작하였지만 1970년대에 파손되었고 2004년에 재건되었으며 2008년에 '천셴구의 이야기'가 선전시 제1차 시장 무형문화유산보호 프로젝트에 포함되었다. 천셴구의 이야기는 민속 이야기의 계승 가치를 가지고 있어 각본으로 제작되어 월극(粵劇, 광둥극) 무대에 올려져 각지에서 공연되고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후손들이 천셴구의 남을 돕고 약자를 구제하며 사심 없는 봉사의 정신을 대대로 계승하기 위해 천셴구가 신선이 되는 날(음력 정월 23일)을 '셴구단(仙姑誕, 선고탄)' 축제로 정하고 매년 '셴구단' 제사를 지냈다.
새로 건설된 천셴구묘의 부지 면적은 2,000m2이고 원래 모델에 따라 건설되었으며 건축 기술이 정교하고 기세가 웅장하다. 2006년 9월 4일 첫 불공 의식을 드리며 천셴구 제사가 재개되었다.
월극 <천셴구>
2009년 공밍사무소가 전문가를 조직하여 심층 발굴과 지역 주민의 인터뷰를 통해 10만 자 이상의 이야기 모음집 '천센구의 이야기'를 작성하고 '활재천지간(活在天地間,세상에 산다)'를 작곡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야기 모음집을 광동 월극 '천셴구'로 개편했다. 이 극이 2007년 선전시 제1차 시(市)급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편역: GDToday